연구원소개

세계 최고 건설기계 전문 연구기관인
건설기계부품연구원을 소개합니다.

건설기계의 이해

자립기

제 3장 : 자립기(1970년대)

중화학공업화 추진기

제3,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70년대 경제활동의 근간이 된 제3, 4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72~1981)의 목표는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하여 안정적 균형을 이룩하는 데 두었다. 이 기간에는 제3차 경제 개발5개년 계획 착수 직전인 1971년 8월 연간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로 인해 외채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자본수지로 메우는 과정에서 변동환율제를 채택해 당시 교역국들이 보유하고 있던 달러화 가치를 반감시킴으로써 대외채무 부담을 대거 덜어내려고 했던 이른바 '닉슨 쇼크'에 의한 국제경제 질서의 혼란, 1973년 10월의 중동전쟁을 발단으로 시작한 제 1차 석유 파동등으로 어려운 고비에 처하게 되었으나, 외자도입의 급증, 수출 드라이브 정책, 중동 건설경기 등으로 난국을 극복하여 연평균 9.7%의 성장률을 유지하였다.

석유파동과 중화학공업

또 1977년 100억 달러 수출달성, 1인당 국민총생산(GNP) 944달러가 되었지만, 1978년에는 물가고와 부동산 투기, 생활필수품 부족, 각종 생산애로 등의 누적된 문제점이 나타났으며 1979년 일방적인 산유국의 유가 인상 수출 제한으로 일어난 제2차 석유파동이 가세하여 한국경제를 더욱 어려운 고비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그러한 석유파동등의 어려운 외적요인 속에서도 1970년대의 경제활동의 전반적인 배경에는 중화학공업의 본격적인 추진이 두드러지며 주력 성장공업은 중공업의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철강 및 비철금속공업과 중공업의 최종단계라고 할 수 있는 기계공업, 전자 전기기계공업 및 수송용 기계공업 등이었다.
이를 위한 기간산업으로 철강공업을 들 수 있으며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시책이 본격화되면서 철강의 안정적 공급체제확립이 요청되어 1973년 조강기준 103만 M/T, 제품기준 87만 M/T 규모의 시설능력을 갖춘 포항제철의 완공으로 선철 강괴 반제품 열연코일 등 보통강의 수입대체가 이루어지고, 철강재의 수요산업인 조선 자동차 기계 전기 전자 등 다양하고 고급화한 철강수요에 부응하고자 특수강 및 고급강 개발에 주력하여 양적으로 자급기반 확립과 질적 고도화도 기할 수 있게 되었다.

중동진출기 이후

국산 건설기계의 생산

건설기계산업의 경우 중화학공업 중심의 개발과 같이하여 초동기에서 본 바와 같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단으로 점점 국내 대형건설 공사의 발주량의 증가와 함께 건설기계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건설기계용 일부 부품만을 생산하던 국내 건설기계 산업에도 완제품 수입의존에서 탈피하여 수입 대체 품목의 국산 개발의 필요성이 점차 확대되고 또한 앞서 설명한 70년대의 전반적인 사회 경제적 배경에 더하여 제1차 석유파동(1973년)에 이은 중동 건설경기의 특수로 인해 국내의 많은 건설업계가 중동으로 진출하면서 건설기계의 수요는 더욱 더 신장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의 여러 기업들이 선진 외국과의 기술제휴를 통하여 국산 건설기계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대표적으로는 한국기계(주)를 인수한 대우중공업이 기술제휴를 통하여 지게차 생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건설기계산업에 참여하여 굴삭기의 생산으로 사업의 범위를 확장하였고, 볼보건설기계코리아의 전신인 현대양행에서 역시 기술제휴로 도저, 크레인, 로우더, 굴삭기를 조립 생산하였으며 현대자동차, 현재 쌍용자동차의 전신인 동아자동차 등의 자동차 회사를 중심으로 콘크리트믹서트럭의 생산과 동명중공업에서도 지게차 생산에 참여하는 등 70년대 하반기에 이르러 괄목할 만한 건설기계산업의 성장을 보였다.

국내 건설기계업계의 성장

또한 70년대의 산업합리화조치를 기반으로 실시된 산업구조조정정책으로 건설기계산업의 경우 초창기 국내산업의 육성 보호를 목적으로 과당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경쟁업체 참여의 제한, 금융, 세제 및 행정 면에서 다양한 지원책을 사용함으로써 정부가 주도하는 본격적인 산업합리화시책을 통하여 정부의 보호를 받게 된다. 통계에 의하면 건설기계 등록대수 면에서 볼 때 1976년 11,356대에서 1980년 24,741대와 같이 5년에 걸쳐 2배 이상의 건설기계가 등록되어 건설현장에서 활약하게 되었으며 건설기계의 종류로는 도저, 굴삭기, 로우더, 지게차, 그레이더, 덤프트럭, 크레인, 로울러 및 콘크리트믹서트럭 등 다양한 건설기계가 건설현장의 주요작업용 건설기계로 등장하게 되었다.

<표-3>과 <표-4>에서와 같이 그 구성면에서 볼 때 전통적으로 건설기계를 대표하는 도저의 경우 도로건설 등의 수요와 함께 1976년의 구성비에서는 1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점차 그 점유율이 줄어 들고 있는 반면 건설현장에서 다목적으로 사용되어지는 굴삭기의 점유율과 산업전반의 기계화에 따라 물류 이동의 주축을 이루는 지게차 비율의 성장을 주목할 수 있겠다.

국내 건설기계업계의 자립노력

건설기계산업과 관련한 완성장비의 국내 생산 공급 규모 측면에서 보면 1976년에 이르러서야 지게차 외 3기종이 200여대 생산 공급되었으나 그 이듬해인 1977년의 경우 9기종 1,300여대를 생산함으로써 약 1년 사이에 6배에 가까운 대단한 성장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건설기계산업의 생산과 관련한 기술측면에서 볼 때에는 완제품 기술의 경우 거의 대부분 해외 선진사로 부터의 기술도입에 의존해야 했으며 1970년대 중반의 초도 기술제휴 단계에서는 대부분의 부품을 수입에 의한 조립생산 체제로 시작하였으며 점차 부품 국산화에 주력하여 주요 용접 구조물을 중심으로 많은 부품을 국산화하였으나 엔진 및 유압기기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부가 가치가 높은 모든 기능품은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이 1970년대 중화학공업의 성장과 계속되는 건설 기계 수요의 증가를 바탕으로 후반기에 이르러 수입 기계의 국산화를 위한 전형적인 수입 대체 산업으로 그리고 산업합리화 정책에 의해 보호 육성되기 시작한 건설기계산업은 유수의 해외 선진기업들과 기술제휴를 통하여 국내 완성장비의 생산 자급을 시작으로 건설기계산업의 국내 수요에 대한 생산 공급을 시작으로 자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