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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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기계의 이해

초동기

제 2장 : 초동기(광복이후~1960년대)

광복 이후

해방과 건설기계의 도입

1945년 해방과 함께 맞이한 분단된 조국에서의 일반 산업 기계화나 공업화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고 건설산업에서의 기계화의 경우도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으며 일부 미군정시에 기증 등을 통하여 도입되어 선을 보인 약간의 건설기계가 국내 건설산업에서의 기계가 도입이 된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6.25 전쟁과 건설기계

이루 말 할 수 없는 커다란 동족상잔의 아픔을 우리에게 가져다준 6.25전쟁은 수많은 인명의 희생뿐 아니라 약 60여만 호의 주택의 파손과 철로, 도로의 파손과 함께 그나마 미약하게 시작되던 공업기반시설이 거의 50%가 파손되고 무려 약 22억 달러 규모의 물질적 피해를 가져 왔다.
전쟁의 발발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한국전 참전과 함께 연합군 공병대를 통하여 건설기계는 군사용의 목적과 더불어 일반 토목공사 건설에 이용되기 시작되었고 전쟁이 끝나면서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도로복구, 교량의 건설 등에 참전국 공병대로부터의 사용중이던 기계의 기증과 여러 선진국의 경제원조로 도입된 도저, 덤프트럭, 그레이더, 로울러 등의 건설기계가 그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국내에서는 그래도 우리 손에 의해 처음으로 건설공사에 사용되어진 건설기계의 효시라 할 수 있겠다.

1960년대 이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60년도의 4·19혁명에 이은 제2공화국 수립과 사회적 혼란기를 거치면서 1961년은 5·16군사정변을 통하여 1963년 제3공화국 발족이 되는 과정에서 전력석탄의 에너지원과 기간산업을 확충하고, 사회간접자본을 충실히 하여 경제개발의 토대를 형성한다는 목표를 주요 골자로 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년~1966년)이 추진되었으며 이 시기의 경제성장률은 7.8%로 목표를 상회하였고,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83달러에서 125달러로 증가되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연이어 추진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년~1971년)은, 식량 자급화와 산림 녹화, 화학철강기계공업의 건설에 의한 산업의 고도화, 7억 달러의 수출 달성, 고용확대, 국민소득의 비약적 증대, 과학기술의 진흥, 기술수준과 생산성의 향상에 그 목표를 두었다.

제 1, 2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거치면서 전반적인 사회기반시설의 확충과 공업단지의 조성계획의 일환으로 경인고속도로(1967년 착공~1968년 완공), 경부고속도로(1968년 착공~1970년 완공), 남강댐(1962년 착공~1970년 완공), 소양강 다목적 댐의 건설(1967년 착공~1973년 완공) 및 울산공업단지 조성(1962년 1월부터 단지 조성에 착수, 1967년 7월 지역확장 공고를 거쳐 1974년 중반까지 계속되었다)등의 당시의 국가 경제규모나 능력으로 보아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여러 가지의 대규모 토목공사가 계획 추진되어지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건설기계의 확보가 필요하게 되었지만 당시 국내 건설기계 생산과 관련한 산업은 일부 부품의 소량 생산이 가능하였을 뿐 완제품과 관련하여는 전무한 상태였으므로 불가피하게 막대한 차관도입 자금을 바탕으로 미국, 일본 등지로부터 건설에 필요한 대규모의 완제품 건설기계가 수입이 시작되어 건설공사에 투입되면서 본격적인 건설기계화 시공이 시작되었다.

중기관리법의 시행

경제개발 계획이 전반적으로 착수되면서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건설기계 대수의 증가와 함께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 관리하고, 비상시 동원체제 마련 및 차관 자금의 상환을 위한 법적인 제도가 필요하게 됨에 따라 지금의 건설기계관리법의 바탕이 된 건설기계의 등록검사형식승인 및 건설기계사업과 건설기계 조종사면허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법률인 당시 중기관리법이 1966년 12월 23일 제정 공포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60년대의 말부터 경제 개발계획과 같이 시작된 대규모 토목건설공사가 추진되면서 기계화시공이 필요하게 되고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수입 건설기계의 도입과 함께 막대한 외화 유출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내건설기계 생산 산업의 필요성이 잉태되기까지가 국내 건설기계산업의 초동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